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(문단 편집) === 위임통치 지정까지 === [[제1차 세계대전]]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[[1917년]] 10월 ~ [[1918년]] 10월 사이의 전투로 영국군은 팔레스타인(오스만 제국의 행정구역)을 점령하였다. 영국은 일단 '점령된 적지 행정부(Occupied Enemy Territory Administration, OETA)'를 개청하고, 즉각 [[군정]] 체제로 전환했다. [[1919년]] 영국은 [[프랑스]], [[미국]]과 함께 [[파리 강화 회의]]를 개최하고, [[제1차 세계대전]]에서 패전한 [[오스만 제국]]의 영토 분할에 대해 논의하였다. 파리 강화 회의에서 승전국들은 국제평화와 협력을 증진시킨다는 명분으로 [[1919년]] [[1월 15일]] [[국제연맹]] 창설을 승인하였다. [[국제연맹]]의 창설은 영국이 [[군정]] 체제로 다스리는 요르단강 유역을 포함해 식민통치를 겪고 있는 모든 [[식민지]] 주민들로 하여금 그들의 이익을 대변해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었다. 그러나 국제연맹은 식민지 백성들의 권리를 대변하지 못했다. [[1920년]] [[4월 25일]], [[국제연맹]]은 요르단강 유역을 영국이 다스리는 [[위임통치|위임통치령]]으로 설정했으니, '''영국령 팔레스타인'''이 세계 지도에 등장하는 순간이었다. 영국령 팔레스타인의 위임통치 규정에서는 영국이 [[시오니즘|시온주의자]]들과 약속한 '[[밸푸어 선언]](Balfour Declaration, 1917년)'을 포함했는데, 이것은 아랍의 지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알리 빈 후세인 ([[샤리프 후세인]]의 아들)과 영국의 외교관 헨리 맥마흔(Sir Vincent Arthur Henry McMahon)이 [[1915년]] 1월 ~ [[1916년]] 3월 동안 교환한 '후세인-맥마흔 서한(McMahon–Hussein Correspondence)'[* 영국이 통일 아랍 국가 수립을 승인한다는 내용의 서한.]에도 모순되는 것이었다. 그러나 영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시온주의자들의 적극적인 활동에 따라, 벨푸어 선언이 반영된 위임통치규정이 그대로 강행되었다. [[1920년]] [[7월 1일]], 영국은 시온주의자 유대인 헐버트 사무엘(Herbert Louis Samuel, 1st Viscount Samuel)을 영국령 팔레스타인의 고등판무관으로 임명하고, [[군정]] 체제를 [[민정]] 체제로 전환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